자율주행 로보택시 시대, 24조 원짜리 '택시 면허'에 발목 잡힌 한국 모빌리티의 현주소

 

  • 글로벌 빅테크가 로보택시 상용화에 사활을 거는 가운데, 한국 모빌리티 시장은 아날로그 규제인 '택시 면허'에 갇혀 있습니다.
  • 자율주행 사업에 기존 택시 면허 매입을 강제할 경우, 초기 진입 비용만 엔비디아의 1년 R&D 예산과 맞먹는 약 24조 원에 달합니다.
  • 과거 모빌리티 혁신을 좌초시켰던 '타다 사태'의 실수가 자율주행 생태계에서 재현될 조짐을 보이며, 국가적 기술 도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뉴스를 통해 구글 웨이모(Waymo)가 미국 주요 도시에서 주당 50만 건 이상의 유료 무인 운행을 달성하고, 테슬라가 완전자율주행(FSD) 기술을 적용한 로보택시 시범운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이런 소식들을 듣다 보면 대중들은 "조만간 우리 집 앞에도 인공지능(AI)이 운전하는 택시가 도착하겠구나"라는 흔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도로 위에서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기 위해 넘어야 할 진짜 장벽은 라이다(LiDAR) 센서의 정밀도나 AI의 연산 능력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는 아날로그 제도의 산물, 바로 '면허 시스템'입니다. 글로벌 모빌리티 산업의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는 지금, 유독 한국만 수십 년 전 만들어진 여객운송 제도의 틀 안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냉혹한 현실입니다.

혁신을 가로막는 기득권의 그림자와 반복되는 역사

역사는 반복됩니다. 19세기 영국은 자동차라는 거대한 혁신 앞에서 마차 산업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의 속도를 마차 이하로 제한하는 '적기조례(Red Flag Act)'를 시행했습니다. 그 결과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후발 주자들에게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불과 몇 년 전, 우리는 이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바로 '타다 사태'입니다.

승차 거부 없는 쾌적한 11인승 승합차 호출 서비스에 소비자는 열광했지만, 기존 택시 업계의 거센 반발과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결정으로 이른바 '타다 금지법'이 통과되며 혁신의 싹은 잘려나갔습니다. 2023년 대법원이 타다 서비스가 적법한 렌터카 서비스였다며 무죄를 확정했지만, 이미 기업은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은 뒤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완전자율주행(레벨4 이상) 시대를 앞두고 이 뼈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반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정부 주도로 출범한 '자율주행택시 사회적 협의체'에서 렌터카 업계의 정식 참여 안건이 부결된 것이 그 신호탄입니다. 기사가 운전하는 택시와 차량을 빌려 타는 렌터카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지는 AI 모빌리티 시대에, 렌터카 업계를 배제하고 택시 단체들 위주로 논의를 주도하겠다는 것은 과거 면허의 틀에 미래 산업을 억지로 끼워 맞추겠다는 의미와 다름없습니다.

엔비디아 1년 치 R&D 비용과 맞먹는 24조 원의 톨게이트 비용

현재 갈등의 핵심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상황의 심각성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협의체 내 택시 업계는 자율주행택시 사업자 역시 기존 택시 면허를 사들여 운영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 택시 면허 수는 약 24만 6,000대입니다. 면허 하나당 거래 시세를 1억 원으로만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전체 면허를 확보하는 데 무려 24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본이 필요합니다.

이 24조 원이라는 금액은,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엔비디아(Nvidia)의 2023년 전체 연구개발(R&D) 비용(약 26조 3,300억 원)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혁신적인 모빌리티 기업이 관제센터를 구축하고 AI 인프라에 투자하기도 전에, 오로지 시장 진입을 위한 '종이 면허'를 사들이는 데만 이 엄청난 자본을 태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사실상 자본의 힘으로 쌓아 올린 철벽이자, 한국 시장에서 자율주행 택시 사업을 하지 말라는 선고나 마찬가지입니다.

자본의 비효율적 배분이 불러올 치명적인 청구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기존 산업과의 마찰은 필연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생계의 위협을 받는 이들을 위한 사회적 완충 장치는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해법이 혁신 생태계의 목을 조르고, 소비자 편익을 볼모로 잡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미국과 중국의 빅테크들이 도로 위에서 수천만 킬로미터의 실주행 데이터를 빨아들이며 AI를 학습시키는 동안, 우리는 밥그릇과 면허 시세라는 내부의 진흙탕 싸움에 갇혀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우리의 합의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막대한 자본이 미래를 위한 기술 R&D가 아니라, 과거의 유산인 기득권 면허를 방어하는 데 묶이게 된다면, 한국의 소비자들은 10년 뒤 첨단 모빌리티 기술의 혜택에서 완전히 소외될 것입니다.

이 거대한 시대적 흐름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한정된 국가와 기업의 자본을 아날로그 시대의 '종이 면허'를 유지하는 데 묻어둘 것인지, 아니면 미래를 이끌어갈 '데이터와 인프라'에 투자할 것인지 말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보는 투자와 산업의 시야는 지금 어디를 향해 있습니까?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