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쇼크의 귀환, 내 지갑을 위협하는 '착한 예산'의 역설

1. 대중의 착각 : 위기일수록 정부가 돈을 풀어야 한다?

최근 미국의 이란 공격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유가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물가가 오르고 경제가 어려워질 때, "정부가 예산을 넉넉하게 풀어서 서민들을 지원하고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직관적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내 주머니가 비었으니, 국가라는 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돌려주면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외부 요인으로 촉발된 물가 폭등기(인플레이션)에 정부가 씀씀이를 늘리는 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대중은 당장 눈앞에 쥐어지는 지원금이나 확장된 예산에 환호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내 월급의 실질적인 가치가 조용히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2. 역사적 맥락 : 50년 전, 인플레이션을 잡았던 진짜 비결

시계바늘을 1973년 10월, 제1차 오일쇼크 당시로 돌려보겠습니다. 1년 만에 원유 가격이 두 배 이상 치솟았고, 수입 물가가 폭등하며 국가 전체가 거대한 인플레이션 파도에 휩쓸렸습니다. 당시 정부가 꺼내든 1974년의 '1·14 조치'를 뜯어보면 매우 흥미로운 메커니즘이 숨어있습니다.

서민들의 팍팍한 삶을 돕기 위해 근로소득세 등 세금을 깎아주어 생활비를 늘려주는 정책을 폈습니다. 여기까지는 흔한 부양책 같습니다. 하지만 진짜 핵심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세금을 깎아주면 국가의 수입이 줄어듭니다. 이때 모자란 돈을 메꾸기 위해 국채(빚)를 찍어내어 시중에 돈을 더 풀었다면, 통화량이 늘어나 물가가 더 폭등했을 것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 당시 정부는 자신들의 예산 500억 원을 스스로 깎아버리는 초강수를 둡니다. 시중에 풀리는 통화량을 철저히 통제하기 위해, 서민 감세로 줄어든 세수만큼 정부의 씀씀이부터 뼈를 깎듯 줄여 재정 균형을 맞춘 것입니다. 이것이 물가를 잡는 교과서적인 거시경제 대책의 정수입니다.

3. 이상 징후 탐지 : 2026년의 청구서, 빚으로 쌓아 올린 728조 원

다시 2026년 현재로 돌아와 팩트와 데이터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로 또다시 물가 상승 압력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현재 우리 국가 예산은 전년 대비 8.1%나 팽창한 728조 원으로 편성되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막대한 씀씀이를 감당하기 위해 109조 원에 달하는 적자 국채(빚)를 발행한다는 점입니다.

중기 재정계획을 보면 상황은 더 명확해집니다. 향후 5년간 매년 예산을 4.0~8.1%씩 늘리고, 매년 100조 원이 넘는 빚을 추가로 낼 예정입니다. 심지어 국가 운영에 필요한 행정 예산은 전체 지출 증가율보다 높은 연평균 6.4%씩 늘어납니다. 과거 외환위기 이후 슬림화되었던 경제 부처가 최근 기획예산처 신설 등으로 오히려 3개로 확대 개편되며 정부 조직이 비대해지고 있습니다. 물가를 잡기 위해 시중의 돈을 빨아들여야 할 시기에, 반대로 정부가 조직을 불리고 막대한 빚을 내어 시중에 돈을 쏟아붓고 있는 치명적인 이상 징후입니다.

4. 결론 : 보이지 않는 세금, 인플레이션을 방어하라

외부 요인으로 공급망이 붕괴되어 물가가 오를 때, 정부마저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 빚을 내어 씀씀이를 늘리면 그 대가는 참혹합니다. 시중에 풀린 막대한 돈은 결국 화폐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우리의 월급과 저축의 구매력을 갉아먹는 '가장 잔인하고 보이지 않는 세금(인플레이션 텍스)'으로 돌아옵니다.

투자자라면 노이즈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명목상으로 늘어나는 정부 예산이나 혜택에 안도할 것이 아니라, 시장에 풀려나는 거대한 유동성이 내 현금의 가치를 얼마나 희석시키고 있는지 냉정하게 계산해야 합니다. 국가가 재정 팽창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시대, 우리는 현금을 쥐고 있는 것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실질적인 구매력을 방어할 수 있는 자산 구조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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