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2천원 돌파 직전, 30년 만에 부활한 '가격 통제'가 불러올 진짜 위기

1. "정부가 가격을 묶으면 내 지갑은 안전해질 것이다"

최근 주유소에 들러 주유기를 잡을 때마다 한숨이 나오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리터당 1600원대였던 경유 가격이 순식간에 1900원 선을 돌파하며 300원 넘게 폭등했습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머지않아 전국 평균 주유비가 리터당 2000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이른바 '석유 최고가격제'를 이번 주 내로 전격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제유가가 오를 때는 빛의 속도로 가격을 올리고, 내릴 때는 거북이처럼 천천히 내리는 정유사와 주유소들의 '비대칭적 가격 인상'에 분노하던 대중들은 이 조치에 환호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강제로 가격의 상한선을 누르면, 과연 우리의 일상과 경제는 정부의 의도대로 안정될 수 있을까요?

2. 가격 통제가 불러온 조용한 파국들

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신호등은 '가격'입니다. 이번에 정부가 꺼내든 석유 최고가격제는 1997년 유가 자유화 조치 이후 무려 30년 동안이나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사문화된 규제입니다. 왜 역대 정부들은 유가가 요동치던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이 제도를 쉽게 꺼내지 못했을까요?

역사적으로 재화의 가격을 국가가 강제로 통제했을 때 벌어지는 결과는 늘 비슷했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미국의 닉슨 행정부가 물가를 잡겠다며 단행했던 임금·물가 통제 정책이 대표적입니다. 겉보기엔 물가가 안정된 것처럼 보였지만, 가격을 올리지 못해 손실을 떠안게 된 주유소들은 주유기를 아예 꺼버렸고, 사람들은 기름을 구하기 위해 끝없는 줄을 서야만 했습니다. 수입 원가는 치솟는데 판매 가격은 묶여 있다면, 기업은 공급을 줄이거나 포기하는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합니다. 결국 시장에서 물건 자체가 사라지는 '품귀 현상'이라는 더 끔찍한 부작용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3. 휘발유를 추월한 경유, 그리고 208일의 한계

현재 시장 내부의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902원 수준인 반면, 경유는 1926원으로 이미 휘발유 가격을 추월했습니다. 화물차 운전자와 자영업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경유 가격의 폭등은 단순한 '주유비 증가'를 넘어 물류비용의 연쇄적 상승을 의미합니다. 이는 시차를 두고 우리가 마트에서 사는 생필품 가격에 고스란히 전가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인플레이션의 전조증상입니다.

정부는 현재 1.9억 배럴, 약 208일을 버틸 수 있는 전략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다며 중동 사태 장기화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하지만 비축유는 전쟁이나 천재지변 같은 물리적인 '공급 단절'을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이지, 시장의 '가격'을 영구적으로 억누를 수 있는 마법의 지팡이가 아닙니다. 최고가격제를 위반할 경우 징역형이나 벌금을 물리겠다는 엄포는 일시적으로 주유소의 가격표 인상을 늦출 순 있겠지만,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드는 글로벌 원자재 상승의 거대한 파도를 막아낼 수는 없습니다.

4. 억눌린 스프링은 반드시 더 높이 튀어 오른다

인플레이션은 법으로 금지할 수 없습니다. 30년 만에 부활한 최고가격제는 치솟는 물가에 고통받는 여론을 달래기 위한 정치적 진통제일 뿐, 근본적인 치료제가 될 수 없습니다.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높은 수준에서 고착화된다면, 인위적으로 억눌렸던 국내 가격은 규제가 풀리는 순간 용수철처럼 더 큰 폭으로 튀어 오를 것입니다.

투자자와 경제 주체로서 우리는 정부의 강력한 통제 의지 이면에 숨겨진 '물류비 상승과 인플레이션의 장기화'라는 팩트를 직시해야 합니다. 단기적인 가격 억제책에 안도하기보다는, 공급망 불안정과 비용 상승이 기업들의 이익을 어떻게 갉아먹을지, 그리고 이 와중에도 가격 결정력을 유지할 수 있는 진짜 튼튼한 비즈니스는 무엇인지 선별하는 냉철한 시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노이즈가 가득한 시장일수록, 제도의 겉모습이 아닌 돈과 물자의 진짜 흐름을 추적하는 사람만이 살아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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