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중의 착각: 매물이 늘면 당장 집값이 폭락할 것이다?
최근 서울 주요 핵심지 아파트 매물이 눈에 띄게 쌓이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드디어 다주택자들이 백기를 들고 물량을 던지기 시작했다며, 머지않아 싼값에 집을 주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합니다. 매물이 늘어나면 가격이 떨어지고, 가격이 떨어지면 누군가는 덥석 집을 살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수요-공급의 논리입니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대중의 막연한 기대와는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물건은 넘쳐나는데 정작 이를 사들이는 사람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대중은 가격표만 조금 내려가면 당장이라도 대기 수요가 몰려들 것이라 착각하지만, 현실의 부동산 시장은 주식처럼 버튼 한 번으로 쉽게 청산되는 구조가 아닙니다. 호가는 여전히 팽팽하고, 매수자는 더 큰 하락을 기다리며 지갑을 굳게 닫은 채 서로를 쳐다만 보는 기형적인 대치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2. 정책과 대출이 빚어낸 거대한 엇박자의 역사
이러한 기현상을 이해하려면 부동산 사이클을 움직이는 두 가지 큰 축, 즉 '세금'과 '금융'의 역학 관계를 짚어봐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정부가 다주택자를 겨냥해 강력한 조세 압박을 가할 때마다 시장은 단기적인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현재 벌어지는 현상의 이면에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조치'의 만료가 임박했다는 치명적인 타임라인이 존재합니다. 세금 폭탄을 피할 수 있는 기한이 정해지자, 마음이 급해진 집주인들이 매도 버튼을 누르며 이른바 '정책발 매물'을 시장에 쏟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물량을 받아줘야 할 매수자들의 손발이 꽁꽁 묶여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 금융 위기 직후나 강력한 부동산 규제 사이클의 막바지에는 항상 대출의 문턱이 한껏 높아져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라는 강력한 대출 규제가 본격 가동되면서, 무주택자조차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습니다. 매도자는 세금 때문에 억지로 물건을 내놓고, 매수자는 돈줄이 막혀서 물건을 살 수 없는 철저한 엇박자가 시장 전체를 짓누르고 있는 셈입니다.
3. 데이터가 말해주는 이상 징후: 역대급 '디커플링'의 발생
실제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작금의 시장 마비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서울에서도 개발 호재와 수요가 굳건하기로 소문난 성동구의 데이터를 보면, 단기간에 아파트 매물이 1,200건대에서 1,800건대로 무려 50% 가까이 폭증했습니다. 매물이 이토록 쏟아졌다면 거래도 활발해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실제 거래량은 123건에서 단 22건으로 6분의 1토막이 났습니다.
상급지로 분류되는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송파구는 매물이 약 40% 늘어났지만 거래량은 304건에서 60건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 동작구 역시 매물이 33% 증가하는 동안 거래량은 171건에서 34건으로 급감했습니다. 매물은 기하급수적으로 쌓이는데 거래량은 바닥을 기는 극단적인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입니다. 더구나 서울 주요 핵심지들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어 반드시 본인이 직접 들어가 살아야만 집을 살 수 있습니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두는 투자 수요조차 원천 차단되어 있으니, 이 엄청난 물량을 소화할 매수 주체가 시장에서 완전히 증발해 버린 것입니다.
4. 결론: 진짜 하락장은 어떻게 오는가
지금의 부동산 시장은 겉으로는 매물이 넘쳐 활발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지독한 동맥경화를 앓고 있습니다. 거래가 수반되지 않는 호가만의 하락은 진짜 시장 가격이 아닙니다. 매도자는 가격을 내리지 않고 버티고, 매수자는 추가 하락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이 '거래 실종' 장세가 길어질수록 시장의 불확실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무주택자나 투자자 모두 무리하게 빚을 내어 지금 당장 바닥을 잡으려는 섣부른 시도는 위험합니다. 막힌 혈이 뚫리고 시장이 제 기능을 찾으려면, 결국 가격이 꺾이며 적체된 매물이 실제 계약으로 소화되는 '유의미한 거래량의 연속성'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조급함을 버리고, 부동산 앱에 찍히는 호가표가 아니라 국토부 실거래가에 찍히는 '진짜 거래량'이 회복되는 시그널을 차분히 기다리는 진중한 마인드셋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